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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정신

바리스타 챔피언의 길, 콩쿨 우승자의 길, 사업가의 길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하지만 카페인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12시 이후로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잘 못 잔다. 그래서 아침 식사를 한 뒤에 커피를 한잔 마신다. 가장 쉽게 마시는 커피는 네스프레소이다. 캡슐 커피 중에 여러 브랜드가 있지만, 접근성과 종류, 커피캡슐의 수거 등을 고려해서 난 네스프레소로 결정했다. 그러나 가끔씩 스페셜티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미리 사 둔 드립백을 내려 마신다. 나는 2군데에서 사 둔다. 하나는 안양의 월드로스터리 챔피언쉽 준우승 경험이 있는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시그니쳐로스터스, 하나는 한때 국내 바리스타 챔피언쉽을 땄던 제주의 커피템플이다. 두 군데 모두 맛이 훌륭하다.

그러나, 맛이 훌륭하다고 해서 다른 훌륭한 커피 전문점에 비해서 월등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알려져 있지 않은 좋은 스페셜티전문점은 많다. 문제는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동네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어서 가게 운영에는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시그니쳐로스터스나 커피템플을 가면 늘 손님이 가득하다. 시그니쳐로스터스는 평촌, 의왕, 군포에서 온 사람들 중에 커피 맛 좀 안다는 사람들로, 커피템플은 제주로 여행온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흐름은 아마도 꽤 오래 지속될 것이다. 매년 로스터리 챔피언이나 바리스타 챔피언들은 생기지만, 10년이 지나도 10여군데일 뿐이다. 희소성은 여전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커피를 내릴 때에 엄숙하다. 커피를 내린 후에는 친절하게 어떤 커피이고, 어떻게 마셔야 하는 지 설명해 준다. 커피를 대하는 태도가 진지하다. 손님들이 커알못이라 하더라도 커피를 진지하게 설명해 준다. 커피에 설탕과 크림을 잔뜩 올려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 나름의 맛을 존중해 준다. 그리고 그 단맛 틈새로 커피의 향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것이 커피라고 정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커피를 삶을 즐기는 도구로 보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방법을 연구한다. 하나의 길에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길을 모색한다.

세상에는 메가 커피같은 저렴해서 늘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커피들도 있고, 스타벅스처럼, 어느 수준의 맛을 보장하면서 문화를 즐기도록 하는 커피들도 있다. 다양한 길이 있고 무엇이 정답이라 말할 수 없다. 여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밥그릇이 걸려 있다. 현지의 커피 생산 농가, 운송자, 중간 매매상, 프렌차이즈 본사, 음료원액 제조사, 알바생들, 점주들 등등. 위생과 공생이라는 최소한의 원칙을 지켜낸다면 다양한 길은 허용된다. 물론 공생에서 나눔의 비율은 권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원칙이 있고, 정점에 선 사람들이 있고, 변주가 있고, 문화가 있고, 최소한의 원칙이 있고, 사람들의 밥그릇이 있다.

커피가 지금처럼 대중화된 데에는 드라마의 역할이 컸다. 또한, 이디야와 같은 최초의 저가형 커피 전문점, 지금은 사라진 까페 베네와 같은 홍보에 전념을 다 했던 기업들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경쟁구도 속에서 틈새 시장이 보이면 공략했고,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커피 시장을 키워냈다. 여기서 어떤 집단들끼리 담합을 했거나, 자기들끼리 inner circle을 형성하지는 않았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배운 수많은 바리스타들이 나와서 까페를 차리고, 사장이 되고, 프렌차이즈를 차렸고 경쟁을 했다. 그것이 오늘날 풍성한 한국의 커피문화를 만들었다. 그 문화 속에 시그니쳐로스터스와 커피템플은 앞으로도 꾸준히 원칙을 고수하고도, 적당히 번영하며 행복하게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경쟁이 보장되는 풍토가 없이는 이 바리스타 챔피언들이 행복하게 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경쟁과 다양성은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좀 다른 것 같다. 클래식 음악계는 교수들이 사실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교수들은 자신의 연주회에 제자들을 부른다. 제자들은 가장 싼 좌석의 티켓을 사서 연주회를 보고, 연주가 끝난 후 환호를 해 준다. 일종의 박수부대이다. 그리고 다음 연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나간다. 그 다음 연주자는 빈 자리를 보게 된다. 누가 연주를 잘 하느냐보다, 누가 권력을 잘 휘둘렀느냐가 중요해진다. 다양한 경쟁이 죽은 것이다. 이 교수들에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을까? 클래식 음악계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음악계는 스스로 개혁할 힘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시장이 커지지 않는다. 레퍼토리는 계속 반복되고, 비평가들의 비평도 현학적이어서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 간다. 시장이 작으니,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편법을 쓰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 나는 돈을 주고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선 사람들도 봤다. 그 역겨움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평OO라는 피아니스트였는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1악장을 연주했었다. 그러니 좋은 연주보다는 인맥 쌓기에 더 노력을 하는 것 같다. 그 결과 관객은 한국 음악가의 연주는 잘 찾지 않는다.

단 예외가 있다. 소위 4대 콩쿨이라고 불리는 국제 콩쿨에서 우승한 사람들의 무대는 찾는다. 조성진, 임윤찬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도 잊혀지기 마련이다. 시장은 작고, 수요는 계속 줄어드는데, 공급은 늘어난다. 이젠 콩쿨도 만들어지고 있다. 아마도 4대 콩쿨도 믿지 못하는 시대가 올 지 모른다. 이러한 혼돈의 시장 한 가운데에서 음악의 원칙을 지키는 연주자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것을 알아봐 주는 관객은 몇이나 있을까? 굉장히 절망적이다.

자유 경쟁이 설 수 없고, 평판과 인맥 쌓기, 교수들의 권력 암투가 빚어낸 이 클래식 음악 시장의 끝은 불보듯 뻔하다. 시립이나 국립 음악단체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로비와 노력을 다 하지만, 정작 들어가면 노조에 가입하고, 또 노조의 힘에 기대어 노력을 게을리 하고, 연주 실력이 떨어지게 되고, 관객이 외면하게 되고, 예산이 줄어들고, 결국 소멸에 가까운 수준이 될 지도 모른다. 음악은 음악만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관객이 티켓으로 평가를 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시장은 관객을 내 모는 데 더 열정적이다. 시각이 단기적이기 때문이다. 눈 앞의 이익을 지키는 데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특히 음대 교수들이 문제다.

조성진은 1년에 100회 정도의 연주회를 한다. 할 수 있을 때 더 많은 관객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의 티켓을 사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연주를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기껏해야 10회 정도 밖에 연주를 하지 않는다. 워낙에 유명하다 보니 30분도 안 되어 매진된다. 조성진은 음악만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해도 된다. 그러니 조성진의 연주회는 믿고 갈 수 있는 것이다. 그 뒤에는 기획사도 있을테지만, 그 기획사도 조성진이 음악만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방향성이 조성진 뿐만 아니라, 모든 국립, 시립 연주 단체, 개인 연주자들에게도 설정되기를 바란다. 비록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기야 하겠지만, 로비하고 영업을 뛰느라 제대로 된 연주를 못한다면 결국 클래식 음악은 대중에게 더욱 멀어질 수 밖에 없다.

클래식 음악은 대중음악이 접근할 수 없는 더 깊은 아름다움의 길, 새로운 아름다움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가는 수행자에 가깝다. 가난해지라는 말이 아니다. 예술가도 생활인이지만, 생활인 쪽에 가까이 서지 않아야 생활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그 누가 영업하는 예술가의 연주를 들으려 하겠나?

기업가들은 어떨까? 기업은 오너가 확실히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조금 다를 것이다. 오너의 성향이 장기적인 생존과 단기적인 이익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기업의 최대 목표는 이윤이라고 알고 있겠지만, 이윤 이전에 생존이다. 생존을 먼저 하고, 고용을 통해 사회적인 역할을 다 한 후에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니, 장기적인 안목이 먼저 깔려 있어야 한다. 시장 질서를 망쳐서는 안 된다. 불량품, 불량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벌려고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제품과 서비스는 보다 좋은 가격에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기업의 시장 질서이다. 시장 질서를 망치는 것은 가격을 후려치는 것이 아니라, 불량품, 불량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좋지 않은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기업은 당연히 자유 경쟁 제가 보장 되어야 한다.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되고, 소비자들의 요구에 늘 귀를 기울여야 한다. 평판과 인맥 쌓기, 기업간 암투보다는 고객을 더 자주 만나야 하고, 고객 서비스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마치 바리스타들이 믹스커피만 마시던 손님에게 "믹스커피 좋아하세요? 그런 맛으로 즐기시려면, 우유를 80ml 정도 타시고, 설탕은 세 스푼 정도 타시면 됩니다. 그러면 믹스커피보다 더 맛있을 거예요."라고 답을 알려주듯이 기업인도 그런 고객 만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의 부를 창출하고, 사회의 편익을 창출하고, 클래식 음악가들의 연주를 갈 수 있는 여유를 창출하고, 바리스타 챔피언들의 커피를 소비할 수 있는 여유를 창출하게 하는 기업가의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