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든 책이든 유행가사든 철학사조든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 번아웃, 워라벨, 워라하(워크 & 라이프 하모니). 이타적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 등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들을 그냥 흘려 보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차곡차곡 머리 속에 쌓기도 한다. 그 중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들은 그 이야기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이다.
"진짜?"
계란 후라이 하나를 구워도, 레시피 대로 하면 망치기 일쑤다. 계란 하나의 크기, 화구의 종류, 후라이팬의 크기와 두께, 계란을 냉장고에 보관했는 지 실온에 보관했는 지에 따라 레시피는 다르다. 맛의 기준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니 아무리 유명한 요리사가 방법을 알려줘도, 직접 해 보고 깨달음이 있어야 계란 후라이를 맛있게 만들 수 있기 마련이다. 철학도 삶도 책 한권이든 백권이든 읽는다고 끝나지 않고, 경험으로 녹여내고 거기서 직접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망친 계란 후라이처럼 되고 만다.
유명한 석학들이 하는 말에도 하나같이 의심을 해 보는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을 굳게 믿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판단도 의심한다. 공부하고 경험하여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항상 데이터는 부족하다. 그래서 선택과 결정도 의심 속에 내린다. 결국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감당하는 것이 삶이라 생각한다. 모든 정보는 참고일 뿐,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늘러붙은 계란 후라이를 보고 "저 요리사는 사기꾼"이라고 하는 사람과 타버린 후라이를 먹어 보고 다음 번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일주일 내내 계란 후라이를 도전하는 사람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삶은 감당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아니면 누가 감당해 준단 말인가?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관통하는 삶의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꼼수를 부리지 않고, 편법을 쓰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남들보다 2배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남들보다 2배는 더 욕을 들어도 참아야 한다. 물론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는 않겠지만, 그 누구도 완벽하게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가족이 생기고 친구가 생기면 그 가족과 친구가 가하는 비난은 몇 배는 더 아프다. 진리를 위해 가족과 친구도 버리다 보면 찾아오는 것은 외로움일 것이다. 진리가 뭐가 대수냐 싶겠지만, 남들 편법 써서 대학 들어갈 때, 편법 안 쓰고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결국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게 되지 않겠나?
외로움 앞에 장사는 없다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그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진리를 탐구하고자 정도를 선택하면 외로움과 불편함과 억울함이 찾아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정진하다 보면, 진리를 찾기보다 먼저 실존적 허무주의를 만나게 된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관계를 정리하다 보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우울증적 상태가 찾아오게 된다.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되고, 꼭 무언가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며, 결국에는 과연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된다. 그리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되고, "언제 죽을 것인가?"가 된다.
반면 죽어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겪게 되는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괴로움과 불행을 두고 저울질 할 수 밖에 없고, 애석하게도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행복보다는 불행이 지속력이나 충격이 더 강하다. 칭찬보다는 비난이, 함께 한 기억보다 버림받았던 기억이 더 오래 남는다.
굉장한 쾌감은 없다. 하지만 굉장한 시련은 있다. 굉장한 사랑은 없다. 굉장한 외로움은 있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끊임없이 결핍을 채우려고 한다. 그런데 채우려 할 수록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실존적 허무주의가 진리를 찾아가려는 사람에게 강력하게 찾아온다.
왜 살아야 하는가? 죽지 못해 산다는 것이 진리에 가장 가깝다. 그러니 나를 죽여도 좋고, 같은 논리로 세상 모든 사람을 죽여도 괜찮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가? 허무주의를 이유로 내가 나를 죽이기 이전에 타인을, 또는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이 쉬운 일인가?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은 허무주의라는 이성적 사고 이전에 생명을 대하는 감정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최근에 난 생바질로 피자를 만들어 먹고 싶어서 바질을 키우기로 했다. 그런데 이 바질이 어찌된 노릇인지 하루라도 물을 안 주면 잎이 말라 가는 것이다. 퇴비를 주지 않아서인 것 같아 퇴비를 줘 봤다. 이번에는 물을 줘도 죽어 가는 것이다. 이 놈을 꼭 살리고 싶었다. 허무주의에 빠져서 자살할 생각으로 머리 속이 가득한 내가 고작 이 바질을 살려 보겠다고 정보를 찾아 보고 화분을 바람이 잘 드는 곳에 배치해 보기도 하고, 흙갈이까지 했다. 마침내 이 바질은 다시 살아났는데, 이 바질을 살렸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자랑했는지 모른다. 이것은 성취이기도 했지만, 생명을 살려냈다는 것이 좋았던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나는 조혈모세포 기증을 해서, 이미 한 명을 살린 적도 있다. 그런 내가 가장 지능적이고 헌신적으로 살던 나를 죽이려 한다. 이젠 살아갈 이유가 없고, 삶에 재미가 없으며, 나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내가 없는 세상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논리로 말이다.
나의 우주와 시간은 내가 죽는 순간 소멸된다. 그러니 내 아이들, 내 주변 사람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의 존재 여부는 그 뒤로는 알 길이 없으며, 무의미해진다. 역사를 통해 수많은 이의 죽음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지만, 정작 죽은 당사자에게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타인의 유의미도 나의 죽음 앞에선 무의미다. 이것이 삶과 죽음과 관계의 본질이다. 그러니 삶은 나를 위해야 한다. 그런데, 나를 위해서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예술, 사랑도 모두 부질없고 그 행복은 영원히 가기는 커녕 1년도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결과는 뻔할 것이고, 그럴 바에야 지금 당장 삶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정신과 의사는 방전 상태라고 본 것 같다. 전두엽이 고장이 났다고 본 것 같다. 무엇을 하든 재미는 없었고, 무엇을 하든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귀결되었었다. 나는 몇 개월간 "죽지 못 해 살아 있는 존재"였고, "죽음의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자살을 결행할 뻔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아주 사소한 계기가 있었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을 것이다. 죽는 것은 사실 굉장히 쉽다. 그 시간은 매우 공포스러웠는데, 그 시간이 지난 후에 나를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주변을 둘러 보니, 내 환경이 거의 망가져 있었다. 의,식, 주라는 기본이 모두 망가져 있었다. 옷은 지저분하고 낡고 냄새가 났다. 집에서는 거의 음식다운 음식을 먹지 못 했다. 대충 만든 음식, 대충 보관된 음식, 곰팡이가 핀 냉장고. 뭔가 먹으면 배탈나기 일쑤였다. 집은 더러웠다. 먼지 투성이였고 도저히 내가 새로운 환경을 만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살림을 맡았던 아내도 우울증이었는 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내는 전업주부로서 최소한의 일만 했을 뿐, 방전된 상태인 나에게 재충전을 할 만큼의 환경을 제공해 준 적이 없었다. 난 아내에게 가사도우미를 쓰라고도, 식기 세척기를 쓰라고도, 로봇청소기를 쓰라고도 했으나, 아내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가지였으나 모두 핑계였다. 아내는 나를 돈벌어 오는 기계로 생각했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비참하게 내팽개치는 사람을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사업가는 기업의 모든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다. 적자를 보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 하고, 고객들의 컴플레인도 결국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직원들을 감싸줘야 한다. 모든 잘못이 자신의 책임이니 그 무게가 무겁다. 문화를 만들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기술과 경영과 영업과 투자 모두 구멍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인가? 사람들은 일단 믿어야 했고, 믿은 사람에게 배신 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했고, 배신 당한 것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탓이었다. 직원들로부터 억울한 비난을 당하는 일 역시 비일비재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에너지가 소진되자 고객을 만나는 것이 싫어졌고, 회사는 지옥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사업가의 자세로부터 하나 둘씩 회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피가 시작되자 내가 갈 곳은 결국 집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집 역시도 엉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 하고 있었고, 인정받지 못 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것 없이도 잘 살 것 같았지만, 내가 지켜냈던 그 가치들이 이렇게 비참한 지경의 나를 만들 것이라는 상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돈벌어 오는 기계, 월급주는 기계, 후원금 주는 기계. 최소한의 연료만 공급해 주면 되는 기계였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도망간 곳이 바로 합창단과 예술의 전당이었다. 하지만 합창단은 더 참혹한 지옥이었다. 합창단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곳이었고, 더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다. 내 우울증은 오랫동안 지속되었지만, 자살을 결심하게 된 촉발은 합창단의 소프라노 파트의 한 무리 때문이었다. 그들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대응하지 않았지만, 그런 어이없는 이야기가 통하는 세상이 있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그렇다고 그런 시궁창에 합류하기는 더욱 싫었다. 모든 진실은 밝혀지기야 하겠지만, 소위 맘까페 회원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우울증성 치매 현상까지 오고야 말았고, 그 때부터 본격적인 어둠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합창단원들이 무언가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들은 자기들의 삶을 살고 있었는데, 내가 그 곳에서 없는 에너지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고, 원리 원칙 대로 잘 해 보려고 애쓰다가 쓰레기같은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바닥을 쳤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깊은 바닥을 쳐 본 적이 없었다. 결국 의사의 권유로 모든 것에서 물러났고, 그렇게 2개월이 지났다. 다행스럽게 예술의전당에서 보았던 수많은 최고 수준의 클래식 공연들은 많은 자극과 감동, 몰입, 신선한 경험을 주었다. 그곳은 나와 궁합이 잘 맞았다. 늘 가고 싶은 곳... 예술의 전당을 가는 날은 옷을 잘 갖춰 입고, 면도를 하고 나섰다. 그렇게 하나 둘씩 내 삶을 바로 세우기 시작했다. 집을 나왔고, 나만의 안식처에서 내가 원하는 의식주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가끔씩 집을 가 보지만 여전히 집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난 예술을 사랑하고, 옷을 갖춰 입고, 요리를 괜찮게 하고, 안식처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산다. 회사에서는 책을 쓰고, 내 머리 속에 있는 지식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것을 훗날 사람들이 어떻게 활용할 지는 모르지만, 난 그렇게 매일 몰입하는 희열의 시간을 갖는다. 협회에서 이사로 활동하면서 최근에는 부회장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기로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좀 더 다양하게 넓혀보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할 주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때, 예술가처럼 살아 볼까 생각도 했었다. 성악을 하고, 합창단의 단장도 하고, 피아노를 치고, 버스킹을 하는 등... 그 일은 재미있지만,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뼛속까지 엔지니어다. 다만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을 잘 이해하고, 즐기려고 했던 것이다. 인생의 2막은 예술가가 아니라, 여전히 엔지니어로서의 삶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회사에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 그래도 음악을 유달리 사랑하는 탓에 음악과 관련한 연구를 하기로 마음 먹고, 피아노와 음향 기기를 연구하며 취미인 듯 연구인 듯 일을 하고 있다. 업무 시간의 상당 시간은 기계의 안전 설계와 관련한 책을 쓰고 있다. 내가 25년간 전문성을 쌓아 온 분야의 기술 해설서인데, 그 해설서를 쓰고 있자면, 몰입의 즐거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몰입은 내가 우울증에서 탈출하는 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최근에 피아니스트 박재홍의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 시리즈를 들었었다.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를 들었었다. KBS교향악단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을 들었다. 이들 음악은 깊은 몰입감을 선사했다. 박재홍은 뛰어난 연주 실력과 국제적인 콩쿠르 우승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덜 알려져 있다. 박재홍의 혼신의 힘을 다 해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모습이 보였다. 조성진, 임윤찬처럼 유명하지 않으면 어떤가? 몰입은 비교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이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비킹구르 올라프손 역시 마찬가지다. 바흐를 연구하면서 나름의 경지에 올랐다. 그의 타건은 방식이 독특했다. 소리를 연구하는 그의 모습에서 또 한 번 몰입의 경지를 느꼈다. 콩쿨 우승 경력이 없으면 어떤가? 쇼스타코비치는 또 어떠한가 공산주의 독재자에 냉소적으로 항거하면서 나름의 음악 세계를 펼친 사람이다. 그가 만든 8번 교향곡의 마지막 마무리는 정말 소름 돋았다. 난 그들의 몰입에 경외감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나의 몰입에 경외감을 표현한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그리고 난 이 분야에서 꽤 유명하다. 나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들도 이 분야에는 몇몇이 있다. 아마도 내가 고도 우울증으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 역시도 그들에게는 꽤 의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마무리하지 않은 일들이 많다. 책을 쓰는 것만 해도 앞으로 10년은 써야 할지 모른다. 꼭 써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쓰지 않는다면, 아마도 1년에 수십명은 더 죽을 것이고, 수십명의 동료인 수백명은 사고 후 트라우마에 괴로워 할 것이다. 그 중에 몇몇은 자살로 생을 마감할 것이다.
더 정성껏 써서 100년 뒤에도 계승의 가치가 있는 책을 쓴다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트라우마에서 건져낼 지 모른다. 그 사람들이 운전 중에 담배 꽁초를 버리고, 여자들을 희롱하고, 아이들을 때리고, 인종차별주의자라 할지라도, 그들을 살릴 수 있다면 해 볼만하지 않을까. 악인 1명을 살리겠지만, 평범한 수십명, 선한 1명 또한 살릴 것이고, 그들이 실존적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하며, 분명히 심장을 쓸어 내리며, 내가 정립한 지식에 감사해 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책 쓰는 과정이 근사한 몰입의 즐거움을 선사하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주객전도의 시간이 있었다. 내가 최초의 회피를 했던 시점에 나는 중창과 합창을 시작했다. 그 시점에 내가 인증했던 설비에서 사람이 죽었다. 내 잘못은 아니었다. 그들이 설비를 임의 개조했고, 그들이 신호 착오를 해서 참사가 발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합리적으로 예상 불가능한 비정상 작업을 예상하지 못한 안일함"이 한 명을 죽음으로 몰았다는 생각에 나는 괴로웠고 그 해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받았었다. 많이 울었었다. 그렇게 우울증이 시작되었고, 그해 중창을 시작했었다. 그 뒤에 이어진 배신과 배신 속에 우울증은 가속화되었었다. 배신이 절정에 달한 그 해 합창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뒤로 나를 보살피는 사람들은 사실상 전무했고, 내가 나를 돌보는 것에 나마저 인색했다. 난 외로운 내 영혼을 위해 울어 본 적이 없었다. 울어서는 안 되었다. 극복하고 해쳐나가야 할 과제들이 너무 많았다. 울었다가는 문제를 풀지 못 할 것 같았다. 다행히 그 문제들은 딱 하나의 문제를 풀지 못한 채 모두 풀었다. 그 풀지 못한 문제는 나의 우울증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깊은 우울감과 빈번한 눈물은 나를 위해 흘린 눈물이었던 것 같다. 자살 충동 역시도 외로운 내 영혼을 위해 흘린 눈물의 변주곡이라 생각한다. 14년간 외롭게 걷다 슬프게 걷다 보니 한바퀴다. 출발점이다. 나는 마지막 문제를 풀고 있는 것 같다.
14년 전 나는 사명감으로 똘똘뭉쳤지만, 지금은 살아야 할 이유도 죽어야 할 이유도 없으며, 삶은 즐거움보다 고통이, 행복보다 불행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실존적 허무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을 완수하려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노래나 피아노가 아니다. 엔지니어로서 내 전문 분야에 대해서 나만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남기는 것이다. 그것이 후대에 어떤 의미가 될 지 알 수 없으나, 내게 남은 시간은 지식을 문자화하는 몰입의 시간으로 채우려고 한다.
모든 것은 소멸된다. 그리고 모든 것은 덧없고 무의미하다. 나는 무의미한 필멸의 존재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시간의 의미는 내가 부여한다. 나의 소멸될 시간도 이젠 나의 소중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년전이었나? 모 회사에서 화학물질을 뒤집어 써서 2명이 사망한 적이 있다. 이 때, 사내 구조요원들은 구조 과정에서 이 화학물질을 뒤집어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내가 쓴 보고서를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TFT팀장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대표님이 써 주신 보고서가 2명을 살렸습니다."
주객 전도의 시간이 끝났다. 나는 다시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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