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가 끝이 났다. 감동적이다. 그러나 이 요리 프로가 감동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꽤나 명쾌하다. 편집, 휴먼스토리가 아니다. 아무리 편집과 휴먼스토리가 있어도, 엔지니어링의 세계에서는 이런 감동적인 프로그램은 불가능하다.
요리라는 세계는 진입장벽이 낮다. 또한 업계 전문가들을 누구든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 치열하다. 누구든 도전할 수 있고, 치열하다면 성공할 수 있지만, 성공확률이 매우 낮다. 요식업계의 1년 후 생존률은 60% 정도이다. 5년 생존률은 29%. 이 때 빚의 유무는 따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빚 없이 폐업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요식업계 사장님들은 폐업을 한다. 이렇게 생존한 사람들 중에 극강의 사람들만 뽑았으니 인성과 실력을 두루 겸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입맛은 객관적일 수 있으나, 어느 정도 주관이 개입할 수 밖에 없고, 변수도 많기 때문에 경연이 흥미진진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요리 업계를 제외하면 이 경연이라는 게 쉽지 않다. 음악 분야는 콩쿨이 있긴 하지만, 진입 장벽이 높고, 이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최소한 그들보다 더 섬세한 귀를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악은 어느 정도 과학적으로 측량이 가능하다. 그러니 음악 경연은 재미가 없다. 클래식 경연을 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엔지니어링은 한술 더 뜬다. 진입장벽이 더 높다. 분야는 더욱 세분화되어 있고, 전문가들간의 경연은 성립되지 않는다. 전문가들끼리 협업을 할 지언정 서로의 실력을 견줄 수 없다. 요리사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완성의 형태를 명확히 갖고 있지만, 엔지니어들의 세계에는 그런 것이 없다. 계속 이어질 뿐이다. 요리사들에게는 평점과 미슐랭 스타라는 명쾌한 기준이 있지만, 엔지니어링에서는 없다. 그나마 기술사라는 자격증도 업계에서는 실력을 보증하는 자격증은 아니다. 그저 공기업에 취업하기 좋은 자격증일 뿐이다.
감동이 있다는 것은, 그 뒤에 숨은 눈물이 있기 마련이다. 엔지니어의 세계에서는 숨은 눈물이 그다지 강렬하지 않다. 치킨집 사장님이 된 엔지니어들의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다들 잘 먹고 잘 산다. 반면, 요식업에는 성공이 알려진 0.1%의 사람과 그럭저럭 잘 사는 10%의 사람과, 어렵지만 버티면서 살아가는 10%의 사람과 결국에는 빚을 떠 안고 폐업하게 되는 80%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감동보다 처절한 생존의 슬픔이 더 짙다.
흑백 요리사가 요식업계를 살릴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80%의 폐업을 고민하는 사람들, 10%의 어렵지만 버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욱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다. 대중의 눈높이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흑백 요리사가 요식업계를 살리는 결과로 이어지려면 결국 요식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더욱 분발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HMR과 간편식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요식업계는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다.